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눈가의 흉측한(?) 주름만이 아니다. 나는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만나는 군인을 통해서, 세월이 이만큼이나 지나갔음을 알게 되곤 한다.
@ 동서울 터미널
처음 터미널 앞으로 이사와 환호성을 질렀던 것은 집이 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집이 바로 터미널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더 컸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했겠다, 말로만 듣던 스무 살 성인이 되었으니, 나를 말리지 마세요, 나는 언제라도 집시처럼 홀연히 떠났다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와 살겠어요, 라고 부모님께 큰소리쳤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동서울터미널을 거쳐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나 왜 여기 이사 와서 좋다고 환호한 거래….
그럼에도, 터미널에는 정말 자주 갔었다. 여러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군인' 선·후배, 동기들을 마중 나가고 배웅 나가는 것이었다. 부대와 통하는 버스가 많았던 탓에, 내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이 동서울터미널을 거쳐 가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 진짜 착했다(?). 많은 녀석을 거의 다 맞이하고 떠나보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역시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헌데, 이 '군인'들은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잘 맞추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지라,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하면 전화벨(핸드폰 사용이 흔치 않던 때)이 울렸다. 그때를 놓친 놈(?)들은 반드시 삐삐를 활용하는 영리함(?)도 보여 주었다. 효진아, 나 휴가 나간다. 터미널에서 잠깐 보자.
어리바리하게 굴다가 머리에 맞지 않는 모자를 쓰게 된 녀석의 이마에 앉은 딱지와, 한겨울에 코트도 걸치지 못하는(안 걸친 건가?) 군복, 그리고 거칠게 튼 손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서 코끝이 늘 시큰거렸다. 때로는 좀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막상 터미널에 나가 만날 때면, 그래도 내가 나오길 잘했지, 하며 잠시 귀찮아했던 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두 팔 벌려 반가워하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눈물 참을 때) 보낸 선·후배, 동기들은 모두 터미널을 떠났고, 훨씬 전부터 또 다른 앳된 녀석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오래전에 본 나의 '군인'들과 같은 모습이다. 달라진 것은 내가 그들을 볼 때 느끼는 마음. 왜 이렇게 파릇파릇해 보이는 걸까. 사실은 그래서 더 안쓰러워 보이지만.
날마다 스치는 터미널 앞 군인들. 다 내 자식 같고(나이 서른에 이런 느낌이 오다니!?), 내 동생 같아서 볼 때마다 따뜻하게 한 번 포옹도 해주고 싶고, 밥 한 그릇 사주고 싶다. 입안에서 그 말이 맴돌지만 뱉을 수는 없다.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 같다. 아니, 좋아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