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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30 13평의 행복 (9)
분류없음2008/01/30 02:21

# 아래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비밀(?)이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아빠한테 뺏긴 것일까? 아니면, 사진을 찍고 나서 집이 무너지기라도 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쇼파위에 편안히 앉아 있는 아빠와 나

# 너무나도 신이나서 소파 위로 뛰어 올라 앉아 맛난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던 기억이 뿌연 사진과는 달리 내 머릿 속에 선명하다. 아빠는 의젓하게 내 옆에 앉아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값비싼 카메라는 아빠가 우겨서 샀다고 한다. 덕분에 내 사진이 많지.^^) 곧바로 엄마는 사진을 찍어주셨지만, 끝내 사진 속에 등장하지는 않으셨다. 저 배경을 뒤로한 사진은 저렇게 단 한 장 이다.

# 저 집은 우리 주인집이었다. 요즘은 모르는 사람을 집 안에까지 들여 한 집에 사는 일이 흔치 않지만, 멀지 않은 옛날에는 큰 주인집에 한 가족이 방 하나를 얻어 사는 경우가 아주 흔했다. 우리 집에 바로 그런 집이었는데, 아직 내 동생이 태어나기 훨씬 전이었던 그때, 넉넉치 않았던 우리 세 식구는 그렇게 굉장히 많은 방을 옮겨다녀야만 했다.
  창신동, 개봉동, 미아리(지금은 미아동), 성내동, 가락동, 구의동 등, 옮겨다닌 동네 숫자만 해도 적지 않았고, 그 동네 안에서도 최소 1번 이상은 이사를 했기에 내가 스무살이 되던 그 때까지, 봄이되어 이삿짐을 싸는 일은 해마다 찾아오는 연례행사와도 같았다.

# 짐을 하도 자주 싸다보니 짐 싸는 걸 좋아하게 된건지 아니면 원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는지 나는 이삿짐을 쌀 때마다 신이나서 환호성을 질렀댔다. 그리고 가끔 부모님께 묻기도 했다. 우리 또 이사 안가요?
  이사 온 집이 지겨워 질때쯤 짐을 꾸려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한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의 여행과도 같았다. 뭔지 모를 설렘에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이삿짐을 꾸리던 꼬마아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참 철이 없었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집을 사지 못해서 전전긍긍해야만 했던 부모님의 걱정은 알지도 못한채, 이사한다는 한 마디에 좋다고 방방 뛰어다녔으니 말이다.

# 그렇게 방 한칸을 전전하다가 어느새 방이 두 개인 전셋집으로, 다시 큰 방이 두 개인 전셋집으로, 다시 방이 세 개인 것은 물론이고 15평이나 되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사이에 다섯 살 아래 동생도 태어났다. 그리고 몇 해 후, 드디어 13평 짜리 우리집을 샀다.

# 13평. 방 두 개. 화장실 한 개, 부엌겸 거실(식탁 하나 놓으면 거의 꽉 차는)이 한 개인, 다행이 작은 베란다도 딸린 집이었다. 방 양쪽을 가르는 벽에 설치되어 있던 콘센트 사이로 종종 엄마 아빠가 조근조근 얘기하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방음이 영 꽝인 곳에서 동생과 함께 방을 쓰며 중,고등학교를 모두 마쳤다. (내 방이 있었으면 공부를 잘했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부모님께 얘기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하하..)


네 식구에게 차고 넘치는 우리집이 저 멀리 보인다!?

#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내가 기적처럼 대학에 들어가던 그 해, 우리 식구는 그 해 3년 전 분양 받아 두고 손꼽아 기다리던 32평짜리 대궐만한 아파트로 마지막(적어도 지금까지) 이사를 했다. 새 냉장고를 갖고 싶었던 우리 엄마는, 끝내 안된다는 아빠의 반대로 13평짜리 집에 꽉 들어차던 냉장고와 낡은 식탁까지 그대로 새 집에 들여 놓고는 엉엉 우셨다. 누렇게 변한 냉장고가 너무 초라해 보인 탓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힘들게 쫓겨다니며 이사를 하던 시절이 그 위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스무살의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다른 건 몰라도 새 냉장고는 사주세요.

# 지금 우리 네 식구가 32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것은 차고 넘친다. 부모님은 더 욕심이 나실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다 커버려 각자의 삶이 너무 바빠진 나와 내 동생은 언젠가부터 아침 저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가족이 되어버린데다가 집으로 돌아와도 방에 틀어박혀 이렇게 자판이나 두드리기 일수이다. 요상한 집 구조가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 크기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아니, 충분치 못하다. 오히려 이 곳으로 이사온 십년 전부터 넓다란 거실만큼이나 우리 가족의 마음의 간격도 벌어졌다.

더 큰 집은 이제 그만.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아웅다웅 살던 때가 그립다. 콘센트 사이로 엿듣던 부모님의 대화도 그립고, 도무지 일기장을 숨길 수 없이 작았던 내 방도 그립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작은 방 한 칸에서 세 식구가 둘러 앉아 행여 그 냄새가 주인짐으로 샐까봐 조심스레 김밥을 말아먹던 때 마저 그립다.

# 사업이 잘 안될 때마다 우리 부모님은 행여 이 집을 팔아야되지 않을까 걱정이시다. 당연히 사업이 잘 되면 좋겠지만, 혹 어려운 일이 닥쳐서 13평 보다 더 작은 집으로 들어가 살아야 한대도 나는 괜찮을 것 같다. 방 한 칸에 살면서 주인 집 소파에서 신기한 듯 내 엉덩이를 파묻고 까르르 웃던 그때가 나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 집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달랑 두, 세 식구 살면서 더 큰 집, 더 많은 집을 쫓아 허우적 대는 사람들은 침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 부모님이 능력이 그 사람들처럼 다른 집에 눈돌릴 수 있을만큼의 여유까지 닿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온다해도 추하게 허우적대지 않기를 바란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인생. 방 한 칸의 행복을 마음에 품고 미소 지으며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집을 사는 일이 아니어도 세상에는 볼 것도, 할 것도, 즐길 것도 너무 많으니까.

# 입에 풀칠하고 남을 조금 도울 수 있고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을만큼의 약간의 돈을 모으면서 살아가되, 집은 그냥 가슴 속에 하나 짓고 살련다. 방도 엄청 많다.

이 글은 사실 1년 전에 썼던 글이다. 이 글을 쓴지 1년이 채 안된 지난 가을 내 이름으로 된 아담한 집이 생겼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사람들은 내가 무슨 큰 돈을 벌었거나, 부모님이 돈이 많은 걸로 생각하는데, 둘 다 해당사항 없다. 사실상 은행이 사준거고, 일일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개인사가 다양한 각도에서 맞물린 사정이 있다. 여전히 나는 집에 대한 집착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서 집값 좀 올라 은행 대출금을 갚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기대도 없다.(사실 잠깐 혹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이란 간사하기 짝이 없어서, 입장따라 저렇게 정신이 휘청거린다. 그러니, 열심히 정신차리면서 살아야 한다.)

집이란 그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잠시 머무는 곳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곳이다.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느라, 멋진 일상을 놓치기 싫다. 내 집은 여전히 마음 속에 있다.

Posted by 슈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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