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홍당무.
영화를 안봐서 정확히 나와 일치하는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얼굴은 그대로 담긴 영화같다.
영화를 안봐서 정확히 나와 일치하는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얼굴은 그대로 담긴 영화같다.
예고편만 봐도 남 얘기 같지가 않다. 안면 홍조증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도 얼굴이 자주 빨개지는 아이였다.
어떤 여자 아이들은 운동장 5바퀴를 돌아도 땀방울만 맺힐 뿐, 뽀얗고 하얀 피부를 유지하는데 반해, 나는 열걸음만 걸어도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돌아가며 교과서를 읽어야할 때, 내 차례가 아직 멀었음에도 얼굴이 빨개졌고, 숙제를 다 했는대도 검사를 받을 때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떠들지도 않았는도,'떠든 사람이 누구냐?'며 소리를 치는 선생님 목소리에 놀라 또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때론 심장마저 벌렁벌렁!
장자크 쌍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처럼,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나는 특히 체육시간이면, 눈 크고 얼굴이 하얀 똘망똘망한 여자 친구이 부러웠다. 운동장을 여러번 돌아도 언제나 하얀 얼굴을 유지했던 여자 친구들 말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같은 반에 '백'씨 성을 가진, 얼굴이 유난히도 하얗고 원피스를 즐겨입던 공부 잘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모든 부러운 조건을 가지고 있던 그 그 친구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남자 아이들도 그녀를 신비롭게 여겨했던 것 같다.
어느 수업시간, 그녀를 몹시 질투했던 나와 그녀가 친구들 앞에 나란히 섰다. 선생님이 나와 그녀에게 한 발들고 오래 서있기 대결을 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임은 왜 시킨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다리에서는 견딜 수 없다는 신호가 왔는데, 나는 그 순간 곁눈질로 '백'씨 성의 그 친구를 봤다. 꿈쩍 않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어린 마음에, 백 가지면 백 가지가 다 뛰어나난 '그 친구를'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 나도 잘하는거 있어요~'
그깟 다리 한 짝 드는 걸로 그녀를 이기기 위해, 나는 이를 악물었다. 결과는 무승부.
"세상이 공평할거라는 기대는 버려.우리같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해."
영화 예고편에 나오는 '공효진'의 대사다. 앞뒤 안보고 대사만 들어도 가슴이 찡하다. 아주 철저하게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달퍼지냔 말이다.
고등학교 때, 우리 아빠는 나에게 '그래서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씀을 '농담처럼' 하셨다. 서로 껄껄껄 웃는 즐거운 대화의 한토막이었지만, 세상을 투명하게 꿰뚫고 있는 아빠의 진심어린 충고였을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미쓰 홍당무'를 꼭 보려고 한다. 과연, 웃기만 하고 나오는 영화일지, 나의 과거가 오버랩되어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할지 궁금하다.
물론 현실의 나는 '자기애(自己愛)'에 빠져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에 대한 컴플렉스 따위는 이제 없다. 다시 '백'양을 만나도 질투하지 않을 수 있다. 촌스러운 추억의 사진 하나, 이렇게 펼쳐 놓고 웃을 수도 있고!
근데, 어린 시절의 나.. 정말 촌스럽고 못났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