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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BOOK2007/12/18 10:32
아주 가끔 희곡을 '읽는다'. 희곡은 무대 위의 공연을 위해 쓰여진 작품이지만, '텍스트' 읽기로써도 아주 흥미로운 문학적 가치가 있다. 내가 '읽어야만' 하는 줄 알았던 시나 소설이 '낭독회'를 통해 '듣는' 문학이 되듯이, 반대로 희곡 역시 무대 밖을 떠나 '읽는'  문학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무대 위의 슈테른' 프로젝트 때문에 서점에 가서 '희곡' 코너를 자주 뒤적이고 있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경우, 가끔은 메모를 해가며 읽어내려가야 하기도 한다. 종이 위에 놓인 희곡 '읽는' 묘한 매력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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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변덕>, 괴테

무수히 많은 정의로도 끝나지 않은 사랑에 관한 치열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 표현 방법 또한 그 정의만큼이나 다양하여, 각자의 코드에 꼭 맞는 백 퍼센트의 연인을 만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백 퍼센트를 채우지 못하는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다. 어떻게?

연인의 변덕 (Die Laune des Verliebten)은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 괴테가 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첫 희곡이다. 이 작품에서는 두 쌍의 남녀가 등장하여 서로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한없이 베풀고 이해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사랑을 나누는 라몬과 에글레, 욕심에 사로잡힌 소유욕과 집착으로 인해 사랑하면서도 늘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에리돈과 아미네가 바로 그들이다.

에리돈은 아미네를 늘 옆에 두고 소유하려 한다. 아미네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웃음을 보이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아미네는 친구들과 함께 곧 축제에 갈 것을 생각하며 들떠 있지만, 친구 에글레는 아미네가 축제에 다녀온 후에도 과연 무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아미네는 에리돈에게 귀속된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긴다.

「아미네 : 난 그가 내가 바라 본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지 질투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껴. 그의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러면 내 작은 가슴에는 모든 괴로움 대신 조그만 자부심이 자리잡게 되지.」

아미네는 자신의 묘한 마음의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항상 쉽고 애틋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상황을 거치면서도 사랑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법이다. 반복될 괴로움을 눈 앞에 두고 질투에 대한 기쁨을 느끼며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자만일 뿐이다.

「에글레 : 안타깝게도 넌(아미네) 구제할 길이 없구나. 괴로움을 사랑하고, 몸을 묶는 사슬을 흔들면서 그게 음악이라고 우기다니.」

축제에 가기도 전에 에리돈과 아미네는 틀어진다. 물론 에리돈의 지나친 애정(소유에 바탕을 둔) 때문이다. 에리돈의 지나친 상상은 거대한 의심을 낳고, 아미네를 아프게 한다. 이쯤 되면 그녀도 더 이상은 버텨낼 재간이 없다.

「에리돈 : 사랑하기 때문에 한탄하게 되는 거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괴롭히지도 않아! 당신 눈이 밝게 웃고, 당신 손이 나에게 닿으면, 기쁨에 마음이 떨리고 가슴은 울렁이고, 주체할 수 없는 이 행복을 나는 하느님께 감사하지. 그렇지만, 이 행복을 어느 누구도 갖게 할 수는 없어.」

(중략)

「아미네 : 에리돈, 그건 정말 부당해요. 사랑에 빠지면 인간적인 따뜻함도 떨쳐버려야 한다는 건가요?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마음이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게 할 수 있나요? 사랑의 다정한 감정이 증오심을 용납하지 않아요.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래요.」 

이 작품은 두 쌍의 남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가벼운 스토리지만 단순히 사랑을 알아가는 남녀의 감정적인 것만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질투와 소유욕이라는 것은 사랑을 나누려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들과의 관계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는 메세지가 이 극의 중심에 서 있다. 한 개인의 문제는 자신뿐 아니라 그가 소속한 공동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비록 그 강조점이 조금 모자라는 듯 하나, 작가의 후기 작품에서 중요한 테마가 되는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출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사랑의 모습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것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함을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의 세계에만 초대하려 든다면, 이 세상에 사랑은 없다.

「자유를 빼앗기면 모든 즐거움이 사라지게 돼요.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지요.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쳐요. 그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 라고 강요한다면, 그 애는 놀라서 침묵해 버릴 거예요. 」


희곡이 '읽는' 문학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어서 그 수요가 적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번역서가 오래 전 시간 안에 갇혀 있다. 이것은 사실 희곡 뿐만이 아니라, '잘 팔리지 않는 소설' 일 경우에도 마찬인 것 같다. 이 점이 참 아쉽다. (그래도, 소설이 조금 나아 보이기는 한다. 물론, 정확한 추측은 아니다.^^)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