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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술2007/09/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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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1996~2001

술자리라면 가릴 곳 없이 달려가, 술이라면 가릴 것 없이 마시는 내게 스스로 지키는 단 하나의 주도(酒道)-라고 해야 하나?-가 있다. “절대로 속상한 일로 술잔을 들지 않는다.”

같은 소주 한 병도 속상할 때 마시면 알콜 효과가 몇 배로 가속화 되어 채 12시가 되기도 전에 술이 술을 부르는 지경에 이른다. 속상한 마음이 그 속도에 맞춰 가라앉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된다. 밤이 새도록 마신 술과 눈물이, 때로는 콧물까지 범벅이 되어 나도 힘들고 나 때문에 남들도 힘든 사태를 만들기는 싫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속상한 일로 술잔을 들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나만의 주도(酒道)다.

스무 살 때, 대학에 처음 들어와 고등학교를 벗어난 해방감에 정말 앞뒤 안 가리고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 날엔가 갑자기 마음속이 공허해졌다. 나에게 맞지 않는 학과 공부와 연이은 짝사랑의 실패, 종교 갈등, 그리고 대학생활에 대한 실망감 등으로 내 머릿속은 쉴 새 없이 전쟁 중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또 다른 고민을 하던 동기들은 틈만 나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다. 그 수다의 끝에 결국 우리는 '소주'에 모든 어려움을 떠넘기기로 하고 학교 앞 어느 술집에서 뭉치게 됐다.

민맥(민중의 맥)이라는 풍물패 여자 동기 7명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먹고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다.

“아저씨, 여기 소주 일곱 병 먼저 주세요. 잔은 필요 없고요~.”

일천구백 구십칠 년 4월의 어느 날 오후 5시. 각 1병을 손에 든 우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건배를 외치며 병나발을 불었다. 각자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위로해주며, 세상을 욕하고 그놈들은 무한정 씹어대는 동안 우리의 술병 역시 같은 속도로 비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술자리를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미 모두 앞에 텅 빈 소주병이 세워져 있었고, 뒤이어 새로운 소주병이 등장하고 있었다. 주량도 그다지 세지 않은 것들이 그렇게 급하게 목 뒤로 넘겨버린 알콜은 답이 없는 문제를 끌어 앉고 속상해하는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몇몇은 울고, 몇몇은 그 몇몇이 우니까 따라 울고, 또 몇몇은 횡설수설하며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술이 술을 불렀고, 또 그 술이 또 다른 술을 불렀다.

(여기서부터는 내 기억이 아닌 전해들은 이야기.--;;) 어디서 이런 사태(?)를 들었는지, 남자 동기들이 학교 앞으로 달려와 우리의 술병을 빼앗고, 눈물을 닦아주고 달래며 제대로 걷지 못하는 우리를 부축해주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소주잔도 없이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소주병과 그 주위를 둘러싼 정신 못 차리는 일곱 여자.

다음 날 잠에서 깨어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한 시간여 동안 소주를 병째로 마셨다는 것과 얼핏 스치는 남자동기의 얼굴만 남아 있을 뿐. 이래저래 속상한 내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속은 아프고, 목은  들어가고…., 기분은 더 내려앉았다. 진탕 마신 술 덕에 오바이트로 속을 게우듯, 마음을 게울 수 있다면, 술도 약이 되겠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거.


술은 항상 즐겁게. 2002년 2월.


나는 그 뒤로 절대 속상한 일로 술을 찾지 않는다. 마시더라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을 하며, 아무리 술이 물 같아도 나의 강력한 이성이 술병에서 손을 떼어낸다. 내가 술을 목까지 차오르게 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걸 누군가 목격했다 한들 나는 한없이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나의 이런 강력한 이성이 싫다. 목구멍 벌리고 소주 한 병을 부어놓고 목 놓아 울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보고 싶다. 그냥 한 번 그래 보고 싶다. 속상한 날에도 애써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아’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술잔을 드는 내가, 너무 강해서 휘지 못하고 이제는 부러질 것만 같다.

저랑 술 한잔 할래요? 주도(酒道) 없는.
Posted by 슈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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