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다가 부르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왔다. 언제 들어도 그 어떤 멜로디보다 좋다.
살다보니 친구들끼리 시간 맞춰 여행을 떠나기가 힘들어진다. 매년 연말이면 한 자리에 모여 다음 해에는 분기별로라도 만나자며 술잔을 높이 들고 다짐하지만, 사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에. 섭섭하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또 다시 다음 해를 기약한다.
이번에도 수많은 친구들은 역시나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몇몇이 뭉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남해 바다에 있는 저 아래 작은 섬 '소매물도'로, 우리는 드디어 떠.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모처럼만에 떠난 여행이라 하늘도 감동한 탓일꺼라며 애써 위로했다. 그러고 보니 비오는 섬도 꽤 낭만적이고 분위기 있었다. 17가구 밖에 살지 않는 작은 섬을 넘어 썰물 때면 드러나는 길을 따라 등대섬을 올랐다. 돌탑 위에 내 작은 탑을 올려 소원도 빌었다. 꼭 이루어지길 또 한 번 빌었다.
화이트 소주(이거 진짜 맛났다.)를 주욱 들이키며 해녀들의 손길이 닿은 해삼, 멍게, 전복 등을 만나게 먹었다. 처음 보는 이웃 방의 또 다른 섬 손님들과 함께 밤을 지세웠다. 아,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작고 작은 섬 위에서 바다를 보고 있을 때면 둥실둥실 파도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면 평화로운 '영원'이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착각일 수도 있고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몸을 던져보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기에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한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소매물도는 남해 바다위에 둥둥 홀로 내버려진 듯 아주 작은 섬이지만, 관광객을 태운 배들이 거제와 통영 쪽에서 몰려오며 수많은 낯선이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시시때때로 번잡스럽기도 하다. 섬의 90%는 서울 사람들 소유라고 하는데, 이미 서울 사람 누군가에 의해 섬 정면의 큰 부분이 새로운 민박집을 공사중이었다. 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붉은 벽돌을 보며, 씁씁하고 화가 났다. 부족한 잠자리를 해결할지는 모르겠지만, 섬의 모습을 빼앗아 가고 있었고, 주민들의 수입도 빼앗아 갈 예정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팬션 수준은 아니어도 섬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소박한 민박집은 있을만큼 있다.)
아름다울 수록 그 아름다움을 빨리 잃어가는 곳. 그곳은 대한민국. 이 땅의 아름다운 곳을 발견해내는 누군가는 혼자 보기는 죽어도 아까운 그런 곳을 과연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부디. 소매물도의 아름답지 못한 변화가 그것에서 끝이 나길 바라며, 나이드신 주민들의 건강을 바라며, 그리고 내 친구들과의 다음 여행이 머지 않아 또 다시 성사되기를 기다려 본다. 우리를 즐겁게 해 주신 하얀산장 김반장님께도 안부를...
- 200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