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대2009/10/12 14:17

사랑이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무살이 넘으면 찾을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은 지금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이건 사실 너무 당연 한 일. 사랑이라는 것이 본래 답이 없는거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일 거다. 인류는 답이 없는 '사랑'이라는 그것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리고 정의 내리고 있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또 누군가는 소설로, 영화로 그리고, 그림으로. 실체를 알 수 없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사랑이 주는 설렘'을 쫒아 오늘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움직인다.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대상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 더 젋게는 이 세계와의 공존을 기획하는 일이다. 이 공존에서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자신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삶의 창조,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영역이다.

"언제나 그 스스로가 농사 짓는 농부가 되라, 이 존재세계의 인(因)이 되어라. 주인이 되라." 우리 모두가 인(因)이 될 때, 이 인과 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걸 인연(因緣)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인연, 이거는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거나 인연이 넘었다, 인연이 끝났다 그럽니다. 그래서 인연이 성숙되지 않은 중생은 부처도 구제하지 못한다 그러죠. 사무치게 한 번 생각해 몹시다. 연(緣)이 되지 말고, 인(因)이되라는 소리. 이게 바로 '닦는다'는 개념입니다. (농담, '삶과 수행')

고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혼자 갈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무치게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니.

- 고미숙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내가 과연 사랑을 하고 싶은건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 같다. 설렘 이상의 감정이 점철된 관계, 하나이자 둘 일 수 있고 둘이자 하나일 수 있는, 함께 하지만 가장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나의 지지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판적일 수 있는 관계. 나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 하고 싶은거고, 아니라면 사랑이 아닌 그 무엇(대체어가 필요한?)이겠지.

어쨌든 이런 생각 가지고는 연애 못한다는 거.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런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 싶어 기다려본다. 넌 어딨니?

Posted by 슈테른
연애시대2009/10/06 17:27

"얘들아, 대학에 가면 니들 뒤로 남자가 줄을 서거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렴."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지 않거나, 일단 의심부터 하곤 했던 내가 선생님의 저 말씀 하나만큼은 철썩같이 믿었다.

나는 초,중,고를 모두 '남녀공학'에 다닌 '행운아' 이면서, 동시에 그 비일비재한 연애사건 중 어느 하나의 주인공도 되어보지 못한 '불운아'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나의 뻗친 단발머리와 위아랫니에 나란히 사이좋게 깔려 있던 치아 교정기. 이리보고 저리봐도 볼 품 없었던 내가 저슬픈 운명의 길을 걸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성인이 되서 머리를 마음껏 기를 수 있을 것이고, 스무살이 되기 전에 교정기도 철수시킬 예정이었기에, 나도 예뻐질 것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내 뒤에도 남자들이 줄을 설 날이 오리라 '굳게' 믿었다.

줄을 서시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대학. 가보니 정말 사람들이 정말 여기저기 줄을 서고 있었다. 여자 신입생을 보는 선배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고, 이에 질세라 남자 동기 녀석들도 두 눈을 치켜뜨고 여기저기 줄을 섰다. 신기하고 들뜬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내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라... 아무도..... 그 줄!! 내가 섰다.

유난히 인기가 많았던 K선배 뒤에 줄을 서서, 예쁜 친구에게 밀리고 잘난 친구에게 밀리며 눈물과 아픔으로 점철된 시절을 보냈다. 핑크빛으로 물들 줄 알았던 내 스무살의 사랑이 그후로로 오랫동안 참 많이 아팠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열심히 줄을 섰다. 그 줄이... 참 안줄더라..

Posted by 슈테른
연애시대2009/07/20 01:58




나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빼면 완벽했던 그 남자. 뭐하나 빠질 것 없이 나와 잘 맞았던 사람. 큰 고민의 마지막을 늘 함께 의논하고, 나의 취향을 이해는 못해도 존중해주던, 내게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던.... 그래서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었던 그 남자.

한 치의 사랑이 서러워.... 완벽했던 그 남자를 내가 떠났다.

헤어짐을 결심하던 그 순간부터, 돌아서서 바로 후회할 줄 알았고 누구를 만나도 그가 그리울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 좋은 친구를 잃었다는 생각에 못내 아쉽다. 내 청춘의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눈 그와 여전히 친구이고 싶은 욕심이 시시때때로 나를 추억 속으로 이끈다.

빵 속에 박힌 콩을 서로 골라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반가워하며 콩의 맛없음에 대해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던  나의 오래된 친구. 잘 지내고 있니?












Posted by 슈테른
연애시대2008/01/03 02:57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라 여기는 나는, 사랑을 주는 일에도 사랑을 받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가 조금만 다른 방식으로 다가와도 나는 놀라서 도망치고, 내가 다르게 다가가다가도 흠칫하며 뒤로 물러선다. 감정에는 솔직한 편이지만 남은 10%를 전달하지 못해, 늘 냉랭한 기운을 남기며 선을 긋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 감정의 90%를 보지 못하고 보여주지 않은 10%가 남긴 냉랭함만 본다. 90%의 내 감정보다 더 강하게 남는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반복되는 동안 내 마음 안에 상처가 깊게 파였다. 자초한 상처지만 아프긴 아프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에게 '봄날은 갔지만 또 다른 봄이 올 것'이라며, 잠시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고 싶어했던 내가, 정말 존재했던 나였던가. 사랑을 냉소로 일관하다 난도질당한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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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 상우와 은수가 처음 만난 날


은수:
(문득..앞을 보면서) 상우씨.
우리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애.
상우: ...나 싫어 ?
은수: 아니 좋아.     
상우: 근데 왜 ..?
은수: 우리 첨 만났을땐 참 좋았는데 그치 ?



"우리, 그냥 예전처럼 편한 친구로 돌아가자."
"…………그래."

왜 우리가 그냥 친구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천 개쯤 대답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말없이 절반의 눈물은 흘리고, 절반의 눈물은 삼키며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셨다.

술집을 나서는데 내가 삼킨 절반의 눈물이 하늘에서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비겁하게(?) 비를 피하며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비에 젖은 뒷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끝까지 덤덤해 보이고 싶었던 나의 알량한(?) 자존심. 우리는 그렇게 걸었고, 그렇게 싱겁게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내내 펑펑 울었다.
아픈 가슴을 꼭 움켜쥔 채 괴로워했다. 내 생에 가장 긴 고통의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울던 나는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아침이 와서 눈을 떴고, 밥도 챙겨 먹었다. 사랑은 그렇게, 하룻밤 꿈같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영화를 보러 갔다. 아침 일찍부터 그 넓은 영화관의 작은 의자에 혼자 앉아 몸을 웅크린 채, 하염없이 울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며, 나는 뼛속까지 아픈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봄날도 가고, 나의 사랑도 지나갔다. 하지만, 지나가 버렸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 콧등에 남은 그해 봄의 여운은 아직도 또렷한걸.

봄은 또 온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그래서 모두가 죽을 것만 같은 이별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어느 날의 끄적거림.





 

Posted by 슈테른
연애시대2007/12/04 01:30


분명히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그가 침대 끝 저만치에 누워 있었다. 누구처럼 ‘나, 이 사람을 200년 동안 사랑하리라’는 다짐을 속삭이기에는 너무나 로맨틱하지 않은 거리. 그냥 그렇게 누워 잠시 눈을 껌벅거려본다.

꼭 껴안은 채 눈을 뜨고, 눈앞에 보이는 그의 입술이 너무 사랑스러워 살짝 포개던 촉촉한 기억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내 팔 한 짝의 길이만큼 벌어진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오래전.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세게 껴안고 잠들어가던 찰나의 순간. 내가 이러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행복해서 현실이 오히려 꿈같았던, 그래서 한순간 손을 놓으면 안개처럼 사라질까봐 불안해했던 시간. 그와의 만남이 환영이 아니기를 매일 밤 잠들기 전,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했었다. 이것이 정말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해주세요. 이것이 현실이라면 저에게 영원을 주세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바람을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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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그게 그렇게 오래된 일이었던가? 더는 숨이 막힌다는 이유로 세게 껴안지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 행여 그대로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도, 어느 새부턴가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끝없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일 것 같던 하루가 날마다 현실이 되어갔고, 침대에 누우면 기도는커녕 숨고를 시간도 없이 3초 만에 잠들어버리는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침대 끝 멀리 보이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세월 따라 변해버린 사랑의 모습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그랬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라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이를 먹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사람도 변하고 주변도 변해간다. 사람이 세상의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그 바뀐 세상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한결같다. 그냥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어느 순간 처음이 그리워지고, 그래서 그런 날들을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뿐이다.

그날 아침. 멀리 떨어져 누워 있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 위에 놓인 것은 시간이 선물해준 농익은 사랑이었다. 닭살 돋는 사랑의 속삭임 대신 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파바로티의 노래도 그보다 아름답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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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