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라 여기는 나는, 사랑을 주는 일에도 사랑을 받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가 조금만 다른 방식으로 다가와도 나는 놀라서 도망치고, 내가 다르게 다가가다가도 흠칫하며 뒤로 물러선다. 감정에는 솔직한 편이지만 남은 10%를 전달하지 못해, 늘 냉랭한 기운을 남기며 선을 긋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 감정의 90%를 보지 못하고 보여주지 않은 10%가 남긴 냉랭함만 본다. 90%의 내 감정보다 더 강하게 남는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반복되는 동안 내 마음 안에 상처가 깊게 파였다. 자초한 상처지만 아프긴 아프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에게 '봄날은 갔지만 또 다른 봄이 올 것'이라며, 잠시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고 싶어했던 내가, 정말 존재했던 나였던가. 사랑을 냉소로 일관하다 난도질당한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싶다.

영화 <봄날은 간다>, 상우와 은수가 처음 만난 날
은수: (문득..앞을 보면서) 상우씨. 우리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애.
상우: ...나 싫어 ?
은수: 아니 좋아.
상우: 근데 왜 ..?
은수: 우리 첨 만났을땐 참 좋았는데 그치 ?
"우리, 그냥 예전처럼 편한 친구로 돌아가자."
"…………그래."
왜 우리가 그냥 친구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천 개쯤 대답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말없이 절반의 눈물은 흘리고, 절반의 눈물은 삼키며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셨다.
술집을 나서는데 내가 삼킨 절반의 눈물이 하늘에서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비겁하게(?) 비를 피하며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비에 젖은 뒷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끝까지 덤덤해 보이고 싶었던 나의 알량한(?) 자존심. 우리는 그렇게 걸었고, 그렇게 싱겁게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내내 펑펑 울었다. 아픈 가슴을 꼭 움켜쥔 채 괴로워했다. 내 생에 가장 긴 고통의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울던 나는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아침이 와서 눈을 떴고, 밥도 챙겨 먹었다. 사랑은 그렇게, 하룻밤 꿈같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영화를 보러 갔다. 아침 일찍부터 그 넓은 영화관의 작은 의자에 혼자 앉아 몸을 웅크린 채, 하염없이 울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며, 나는 뼛속까지 아픈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봄날도 가고, 나의 사랑도 지나갔다. 하지만, 지나가 버렸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 콧등에 남은 그해 봄의 여운은 아직도 또렷한걸.
봄은 또 온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그래서 모두가 죽을 것만 같은 이별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어느 날의 끄적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