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4/21 공평한 토대, 무상급식
날적이2010/04/21 01:53
전면 무상급식 주장에 대해 누군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이들의 먹는 문제에까지 색깔론을 덮어씌우려는 저열함을 비웃어주는 한편,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원칙, 즉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려면 부모의 처지와 관계없이 아이들에게 평등한 출발점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고 입고 공부하고 자라는 문제에선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한 토대를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사회는 봉건/게급의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어린이 사회주의'야 말로 자본주의의 전제가 된다.  
--  
한겨레 21 803호 <만리재에서> 중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근처에 가면 잘 씼지 않은듯 냄새가 났고, 감지 않은 머리는 갈라지고 기름져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 친구가 하는 일은 친구들이 앞뒤로 삼삼오오 밥을 먹는동안 그저 가만히 두 팔을 책상 위에 모으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서는 부끄러운듯 눈치를 보며 눈동자를 굴리는 것 뿐이었다. 가끔 담임 선생님이 도시락 뚜껑을 그릇삼아 아이들의 밥과 반찬을 모아 그 친구에게 주기도 했다. 혹은 학급 임원들을 시켜 챙기게 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챙기지 않아 굶는 날도 많았다. 

그 친구는 늘 외로웠다.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했고, 그 때문에 함께 나눠먹을 반찬이 없으니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친구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냄새가 나서 싫기도 했고, 나서서 그 친구를 챙길 용기도 없었다. 딱 한 번. 그 친구의 얘기를 들은 엄마가 어느날인가 한 번 점심을 따로 챙겨 줘 전해줬던 기억만 살짝 남아 있을 뿐이다.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등굣길에도 수업시간에도, 그 친구는 늘 혼자였다. 심지어 소풍을 가서도 그 친구는 늘 혼자였다. 같은 반 친구들이 각자 싸온 김밥을 하나씩 모아 건네주긴 했지만, 그 누구도 함께 둘러 앉지 않았다. 산처럼 수북히 쌓여 있던 김밥이 그렇게 외로워보일 수 없었다.

잘 먹지 못한 탓인지 작고 마른 체격이었고 언제나 기운 없는 모습이었다. 어쩌다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면, 귀기울여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생님들은 더 크게 하라며 그 친구를 나무랐지만, 곯은 배를 움켜쥐고 하루를 버티는 그 친구가 어찌 더 큰 소리로 말을 할 수 있었겠나 싶다.

선택한 적 없이 물려받은 '가난'. 가난은 그 친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가방을 챙기는 일도,
몸을 단정하게 하는 일도 서툴 수 밖에 없는 어린 나이의 친구를 돌봐줄 부모님의 시간, 그 때문에 제대로 챙겨 본 적이 없는 점심 도시락,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을 친구, 그리고 공부하고 뛰어 놀 기운까지...

이 친구의 기억이 '그땐 그랬다'는 옛날 이야기이길 바라지만,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누군가의 현실이다. 아이들의 밥 한끼를 빼앗지 못해 안달인 이상한 사람들이 땅에 살고 있다. 너는 뭐 먹고 자라 그러니 대체?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