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아졌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말이 많아진 건 얼마 되지 않은 '그 언제부터인가'라고 여기며 '말이 많아진 것'이라는 상태 변화로 나의 '말 많음'을 대변했다. 그런데 그리고서 내 마음이 몹시 괴로워졌다. 주말 내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붉어진 내 얼굴을 감싸기 위한 변명을 던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늘 말이 많았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조차 이런저런 고민을 나눌 상대로 늘 나를 찾았기에, 나는 내가 정말 '잘 듣는'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물론 진지하게 듣고 함께 고민한 것이 건성이었다거나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나, 대화의 끝엔 언제나 내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얘기 속에서조차 '내가' 빠지고 싶지 않은 이상한 심리.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설 때면, 주저리주저리 나를 설명하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이러기도 하지만, 저러기도 한 사람입니다.'라고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얘기를 들을 틈이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수다 속에서도, 남는 건 내 목소리뿐. 이제 와 뒤돌아보니 그 친구들은 근데 뭘 하고 지낸 거래? 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맴돈다.
자기 얘기만 하는 말 많은 사람을 보면서, 참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그 징조가 보인다. 어쩌면 누군가는 벌써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귀를 쫑긋 세우는 것만이 듣는 게 아니다. 입을 잠시 쉬게 하고, 머리와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 내게 그것이 필요하다.
말을 많이 쏟아내는데 집중하느라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다는 것도 잊지말자.
* 아래의 글은, 5,6년 전쯤, 한 인터넷 카페에 '강PD'님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이 올린 글이다. 글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양해를 구하고 예전에 운영하던 내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나에게 필요한 글이라 다시 꺼내본다.
내게는 일본인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름은 요시미다. 작년 여름에 중국을 여행하던 차에 만났다. 당시는 요시미는 일행이 있었는데, 내가 유독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영어에 능통했기 때 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녀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유난히 말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렇게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내가 영어 말하기 능력이 뛰어나서, 그녀의 그것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어법의 차이였다.
요시미는 한국에 대해서 몹시 궁금해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우리 나라에 대해서 상세히, 좀 심할 정도로, 설명해주었다. 만약, 그녀와 내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녀의 늘어지는 이야기에 하품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내 이야기 하나 하나에 그녀는 집중을 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Really?' 'So?' 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맞장구가 무척 맘에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경청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말하는 습관 자체가 그렇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도 같은 식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내려간 집에는 평소에 못 보던 인형이 하나 있었다. 꽤 귀엽게 생겼다. 막내 여동생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인형이긴 한데 어딘가 구색이 맞지 않다. 옳거니! 입이 없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입 주변이 깨끗하다는 점이다. 즉, 일부러 누군가 뜯어낸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입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 어느새 여동생이 뒤에서 나타나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거리고 있었다.
'욘석아,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아니, 오빠 같은 사람도 인형을 좋아하나 해서. 서울 생활이 힘들긴 한가보지?'
아니, 인형과 서울 생활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어지는 동생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조금은 수긍이 간다. 그 인형은 역시 처음부터 입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잘 팔린다고 한다. 입이 없으니까 말을 못하고 결국은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요즘 세상에서 인간은 함께 있지만 점차 고립화되고 외로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인형을 보면서 이유 모를 편안함을 느끼고 그것을 구입한다. 그리고는 그것에 대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일리 있는 설명이다. 여동생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나는 인형의 입 언저리를 매만지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꼬마인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 인형을 앞에 두고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입은 용도가 생각 외로 다양하다. 일차적으로 식사를 할 때 쓰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 애정을 표시할 때도 쓰인다. 그러나 입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때, 즉 말을 할 때 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입이 귀의 역할, 즉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에도 쓰이고 있다면 귀가 너무 섭섭해할까. 입은 말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듣는 역할도 분명히 한다.
진짜 말을 잘 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말을 진짜 잘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왜 모를까. 내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 역시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다.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피하고 있다. 남의 이야기에 수긍을 하면 경쟁에서 혹시 밀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일 것이다.
무한 경쟁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세상이 사람들을 변모시킨 것일까. 세상은 너무 각박하다. 그 누구도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자신의 의견만이 옳으며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다. 그렇지 않다.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우선 잘 들어주어야 한다. 잠시 입을 없애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힘들다면 입으로 들어보려는 노력도 좋을 것이다.
요시마와는 여전히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그녀의 말하는 방식은 여전했다. 그녀에게 내 동생이 아끼는 그 인형을 선물해야겠다. 널 닮은 인형이라고.
posted by 강PD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녀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유난히 말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렇게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내가 영어 말하기 능력이 뛰어나서, 그녀의 그것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어법의 차이였다.
요시미는 한국에 대해서 몹시 궁금해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우리 나라에 대해서 상세히, 좀 심할 정도로, 설명해주었다. 만약, 그녀와 내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녀의 늘어지는 이야기에 하품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내 이야기 하나 하나에 그녀는 집중을 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Really?' 'So?' 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맞장구가 무척 맘에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경청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말하는 습관 자체가 그렇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도 같은 식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내려간 집에는 평소에 못 보던 인형이 하나 있었다. 꽤 귀엽게 생겼다. 막내 여동생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인형이긴 한데 어딘가 구색이 맞지 않다. 옳거니! 입이 없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입 주변이 깨끗하다는 점이다. 즉, 일부러 누군가 뜯어낸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입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 어느새 여동생이 뒤에서 나타나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거리고 있었다.
'욘석아,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아니, 오빠 같은 사람도 인형을 좋아하나 해서. 서울 생활이 힘들긴 한가보지?'
아니, 인형과 서울 생활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어지는 동생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조금은 수긍이 간다. 그 인형은 역시 처음부터 입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잘 팔린다고 한다. 입이 없으니까 말을 못하고 결국은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키티도 입없는 인형이다. 사실은 그래서 인기??
역설적으로 요즘 세상에서 인간은 함께 있지만 점차 고립화되고 외로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인형을 보면서 이유 모를 편안함을 느끼고 그것을 구입한다. 그리고는 그것에 대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일리 있는 설명이다. 여동생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나는 인형의 입 언저리를 매만지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꼬마인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 인형을 앞에 두고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입은 용도가 생각 외로 다양하다. 일차적으로 식사를 할 때 쓰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 애정을 표시할 때도 쓰인다. 그러나 입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때, 즉 말을 할 때 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입이 귀의 역할, 즉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에도 쓰이고 있다면 귀가 너무 섭섭해할까. 입은 말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듣는 역할도 분명히 한다.
진짜 말을 잘 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말을 진짜 잘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왜 모를까. 내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 역시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다.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피하고 있다. 남의 이야기에 수긍을 하면 경쟁에서 혹시 밀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일 것이다.
무한 경쟁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세상이 사람들을 변모시킨 것일까. 세상은 너무 각박하다. 그 누구도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자신의 의견만이 옳으며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다. 그렇지 않다.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우선 잘 들어주어야 한다. 잠시 입을 없애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힘들다면 입으로 들어보려는 노력도 좋을 것이다.
요시마와는 여전히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그녀의 말하는 방식은 여전했다. 그녀에게 내 동생이 아끼는 그 인형을 선물해야겠다. 널 닮은 인형이라고.
posted by 강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