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사중] 나홀로 지리산 종주기 업어오기. 때는 2006년 8월!
... 떨리는 출발
지리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구례구까지 가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입석으로라도 가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용산역으로 갔다. 출발 5분 전. 끝내 자리는 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말렸다. 혼자 가는 것도 걱정되는데, 입석표가 웬말이냐. 지리산이 어디 도망이라도 가느냐. 왜 꼭 이번에 가야 하느냐, 등등. 하지만, 마음 먹었을 때 밀어붙여야지, 미루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미뤄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항상 거기에 있을 지리산을 향해 꼭 이번에 가야했다.
기차 맨 끝 칸에 화장실이 달려 있는 작은 공간에 입석표를 손에 꼭 쥔채 자리를 잡았다. 기차 안은 구례구 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산행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아, 나 정말 혼자 가긴 가는구나.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다 깨기를 여러 번. 어느새 사람들이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구례구 역에 도착한 것이다. 앗싸. 나도 얼른 가방을 어깨에 둘러맸다.
회사에서 늦게 끝나는 바람에 집으로 부랴부랴 날아가 정신없이 짐을 챙길 때는 몰랐는데, 배낭이 꽤 무겁다. 코펠이나 버너 등, 여럿이 갈 때 나눠 갈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내 배낭에 쑤셔 넣어야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 무게를 내 어깨가 다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슬슬 걱정이 되지만, 어쨌은 여 기는 구례구 역. 두둥! 힘차게 발을 딛었다.
짝을 지어 온 사람들 틈에 끼어 성삼재까지 가는 택시를 탔다. 창밖에서 밀려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이다. 저 산 위에 얼마나 더 상큼한 바람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진짜 시작이다.
... 걷고, 또 걷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건만 길이 훤히 다 보이는게, 참 신기했다. 신기해 할만큼 달빛에 익숙하지 않다는 거였다. 서울에도 달은 떠 있것만, 그 존재를 아무 곳에서나 알 수는 없다. 1시간 조금 넘게 걸어 노고단에 도착. 떠오르는 해를 기다렸다.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이 노고단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생각으로 서 있는 것일까. 2박 3일간의 지리산 종주계획이 머리 속을 휘리릭 지나간다. 넓고도 넓은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한 번 숨을 골랐다.
일단, 어깨가 너무 아팠다. 잠시 쉬며 가방을 뒤져봤지만, 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두 번 쉴 때, 나는 한 번만 쉬었다. 생각보다 혼자 산길을 걷는 것은 힘들었고, 그 때문에 걸음이 많이 느려졌다. 벽소령까지 가야 하는데.., 너무 힘에 겨웠다.
하지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역시 편하고 좋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다람쥐들이 오가고, 살살 부는 산바람에 노래가 절로 나왔다. 마음에 드는 바위에 걸터 앉아 오이로 베어 먹고, 쵸콜릿도 먹었다. 아, 영원히 휴가였으면..^^
산행하는 속도가 비슷하다면, 아까 만난 사람을 또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게 되어있다. 한참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아니, 왜 일행들하고 같이 안가고 혼자 가요?”
“일행이 없는데요!?”
“에엥? 정말요? 아가씨 혼자 왔다구요?”
어디 산을 혼자 오르는 여자가 나 뿐이겠는가. 그저 작은 체구로 자기만한 배낭을 메고 헥헥 거리고 있으니, 아마 그게 신기해서였을거다.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도와주고 싶어했다.
첫날 점심과 저녁은 나를 벽소령까지 이끌어 준 아저씨들과 함께 했다. (아저씨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벽소령에 도착하기 전 해가 떨어진 산 길에서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피소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같은 테이블에는 두 아들을 데리고 산을 오르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너무도 행복해 하고 계셨다. 두 아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학중이며 잠깐 한국에 나왔는데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두 달 전부터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는 것이었다. 아들들도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서로의 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소주 잔을 가볍게 들이키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벽소령 대피소에 밤이 찾아왔다.
나를 챙겨주신다며 일행과 떨어지게 된 두 분은 새벽 1시에 세석산장으로 떠나신다고 했다. 미안하고, 고맙고, 또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