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BOOK2009/11/04 15:10
.퐁. 제목만큼이나 톡톡 튀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소설이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에는 많이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발견한 마음에 드는 구절 때문!

책을 읽는 재미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어!.'라고 무릎을 치며 환호할 수 있는 순간을 만나는 것.  : )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 p. 117

우주의 대부분은 빈 공간이래. (중략)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인데, 왜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 걸까? 이토록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주의 대부분인 빈 공간들이... 어떤 노력을 한다고는 볼 수 없잖아. 그런데도 이것은 우연일까? 이곳에 존재하고, 서로를 견제하고,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자원을 이용하고, 구분하고, 차별하고, 우월해지고, 뺏고, 차지하고, 죽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살기 위해서? 이렇게 빈 공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저 어둠처럼. 

왜 우리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반드시 생존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우연이 우릴 그렇게 고안한 걸까? 인체를 통해 태어나고 길러져야만 인간일까? 영문도 모른 채 남아서 뭘 하려는 걸까?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말이야.  - p 169 ~ 172

Posted by 슈테른
뒷BOOK2009/10/27 02:08
 
언젠가, 갑자기 조제가,
"나 말이야, 지금부터 내 이름, 조제로 할래."
"왜 네가 조제야?"
츠네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없어. 그냥 조제가 내게 꼭 어울리니까. 구미코라는 내 이름, 이제부터 안 쓸래."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다나베 세이코






가끔 누가 나를 '효진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곤 한다. 슈테른이라는 닉네임이 이름 이상으로 많이 익숙해진 탓이다.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심지어 이렇게 나혼자 두서없이 중얼중얼 늘어놓는 이 공간에서조차 나는 '효진이'가 아니라 '슈테른'으로 살고 있다. 나의 본질은 어떻게 불리워도 변함이 없으니, 사실 그게 뭐 중요한건 아니다. 나를 어떻게 불러도,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한편 조제를 이해할 수 있다. 구미코라는 이름이 아닌 '조제'라는 이름을 좋아했던 조제. 그녀는 구미코였지만, 조제이고 싶었다. 조제이며 구미코였지만, 그저 조제이고 싶었다. 나도 그냥 슈테른이고 싶을 때가 있다. 효진이 말고 슈테른. 어떻게 불리워도 같은 사람이지만, 또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Posted by 슈테른
뒷BOOK2009/10/08 01:21
사 년 전에 이혼한 남편 사키무라가 자신에게 던진 '이중인격'이라는 비판 섞인 말을, 우네는 지금 키득거리면서 자기 입으로 발음해본다. 
   '그렇지만 어느 쪽도 거짓이 아닌걸. 어쩔 수 없어.'
-- 사랑의 관  / 다나베 세이코

나를 한 번에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의 모습을 다 보지 못할텐데, 한마디로 요약해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누구에게 얘기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오늘만해도 전에 보지 못한 나의 생소한 모습에 나 스스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내일의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누구를 가르켜 '이중인격자'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당신은 '사람'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중인격자'입니다. 혹은 그 이상.



Posted by 슈테른
뒷BOOK2009/09/30 02:08
어떤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과 관계 없이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이 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쓴 것일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재미 없게 읽은 책도 딱 한 구절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두꺼운 책을 읽어 내려간 시간이 아깝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 그 책을 도대체 몇 달을 들고 다닌건지 모르겠다.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와 사건 전개. 하지만,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지나친 기대감 때문이었거나 내게 맞지 않는 소설이었을 수도 있으나, 절반 이상은 번역탓이었던 듯. 어쨌든, 그럼에도 나에게 남은 몇구절을 기록해둔다.
 

우리는 우리한테 적합한 말만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다른 말이 슬그머니 빠져나가지.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는 우리도 몰라. 우리는 그 말더러 모습을 드러내라고 한 적이 없어. 대개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 말 때문에 대화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고,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예전에 부인했던 것을 인정하거나 인정했던 것을 부인하게 되지. p 289

내 입이, 내 정신이,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일 것 같지만, '나도 모르게 그랬다'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가. 뜻대로 되지 않아 슬프고, 뜻대로 되지 않아 재미있는, 그래서 이야기가 있고, 영화가 만들어지고 누군가는 소설을 쓴다. 모든 존재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이다. 우리가 하루 종일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p 375

짬뽕을 먹어야 할지 짜장면을 먹어야 할지, 미팅을 4시에 할지 5시에 할지, 영화를 볼지 말지, 집으로 가야할지 어디 가서 술이라도 한잔 해야할지, 점심을 먹고 일을 해야할지 일을 마무리 하고 먹어야 할지...

생각해보니 내가 오늘 하루동안 내린 결정이 수 십개는 되는 것 같다.  일의 경중에 따라 결정하는데 걸리는 고민의 크기와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럴 때, '그것은 참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얘기하지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어쨌든, 결국 판단할 수 있었던거고 알고보면 그것은 '쉬운 것'이다. 결정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시간에 함께 보내버리는 짓은 하지 말자. 알고보면 다 쉽다.  



 
Posted by 슈테른
뒷BOOK2009/09/16 01:00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이 진부해졌다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랑이 진부해졌다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中 /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시인은 미래에서 날아와 현재를 사는 과거형 인간인 것 같다. 무엇이든 추억하고 현재의 언어로 기록하는 시인. 그런 시인이 쓴 한 시구절이, 2009년 9월 16일 현재의 내마음을 이미 오래 전에 읽고 간듯하다.

다 알고 있었던거지....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