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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05 시작이 시작 (2)
  2. 2010/06/25 첫 기타 공연 (9)
  3. 2010/05/04 흐트러져도 괜찮아 (14)
  4. 2010/04/21 공평한 토대, 무상급식
  5. 2010/03/18 망설임 없이 떠난 안면도 여행 (2)
날적이2012/01/05 02:31

새해가 되면 항상 새 다이어리에 이런저런 계획을 빼곡히 적어 넣는다. 새해라는 말이 주는 에너지 때문일까? 달력 한 장 넘겼을 뿐인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난다. 덕분에 다이어리 한가득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 수북히 쌓인다. 당연히 대게는 실행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목표. 잘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자씩 적다보면 새해 계획은 점점 더 거창해진다. 

*

2012년이 된 지 엿새가 지났다. 다른 해와 달리 나는 아직까지 새 다이어리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점점 더 화려해질 것이라 굳게 믿었던 삶이 예상외로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뭔가 새로운걸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생각만해도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벌려져 있는 일들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한 해가 가버릴 것 같은 불안함. 수습이라도 되면 다행.

*

내 나이 이제 서른 다섯이다. 서른살이 되었을땐 만세를 불렀는데 다섯살 더 먹고 나는 왜 한숨을 쉬게 됐을까. 많아진 나이는 아무렇지 않은데 잃어버린 것 같은 5년의 시간이 아쉽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혹은 너무 많은 것을 했거나. 5년의 시간의 끝에 막다른 골목에 갇혀 버렸다. 이 길로 걸어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많은 사람들한테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놨다. 문자 그대로 구질구질했다. 모든 건 내 선택아니었나. 원망말고 새로운 선택을 하자고 마음을 다독인다. 과거는 수정할 수 없지만 미래는 만들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

나에게 묻는다. 커서 뭐가 될래?
언제나 시작이 시작이다. 



(*생각해보니 계획 하나 있다. 자신감 충전!)

 

Posted by 슈테른
F코드2010/06/25 16:23


기타를 처음 손에 잡은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띄엄띄엄 배우고 연습한 탓에 아직도 초보 강습생에 머물러 있다. 내가 기타를 배우겠다고 결심한건, 단지 기타치는 여자가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 하지만,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는 일단 한 곡이라도 제대로 해내야 하는데. 이건 뭐.

특별히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기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대문일까. 그냥 멋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만으로는 기타가 잘 늘지 않는다. 근데, 그런 내가 공연을 한다. 나보다 훨~~씬 잘하는 세명의 여인들과 함께.



기타 잘 못쳐... 노래도 잘 못해....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지만! 뭐 나니까. 잘하겠지. 하하.

Posted by 슈테른
연애시대2010/05/04 13:55
 
사랑

연애를 시작한 친구는 자신의 생활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관심도 없는 교양과목을 남자친구가 신청했다는 이유로 따라 듣기 시작했고, 그렇게 열심히 하던 동아리 활동도 하는 둥 마는 둥 멀어져갔다. 여러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 알려줘도 확실하게 참석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엔 친구를 볼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볼 수 없었다. 친구의 생활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라 남자친구였다. 나에게 그 친구는 연애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 친구들이 하나 둘씩... 계속 생겨났다.

나도 연애를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던 모든 것을 지속시켰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이어오던 생활을 유지하고 남는 시간에 데이트를 했다. 나는 내가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만나도 그가 마지막인 것처럼 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당장 보고 싶은게 무슨 대수냐 싶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면 되는거니까. 단 10분이라도 얼굴을 보기위해 달려가는 일 따위는 하지도 않았고, 상대가 하는 것도 싫어했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 당장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남자친구는 그렇게 못나보일 수 없었다. 그런 친구와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별

친구가 살이 쏙 빠진 채로 나타났다. 이별의 후유증이었다. 입맛이 없어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먹으려해도 입안에서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는 온몸으로 사랑의 상처를 입었다. 다 시들어버려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꽃처럼. 당장 해야할 일같은건 안중에도 없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친구는 아프고 또 아파했다.

나의 이별은 그렇지 않았다. 이별 후 나는 언제나 더욱 견고해졌다. 밥도 잘먹었고 일상생활도 더 빈틈없이 잘해냈다. 대학 4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고 조기취업을 해서 회사도 다니고 있었던 그 때. 회사일과 시험 준비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받은 이별 통보를 받았다.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흐트러짐 없이 생활을 이어 나갔다.

머지 않아 이 순간이 과거가 될 것이고, 이별 후 슬퍼하며 흐트러 지지 않았던 나의 냉혹함보단, 정신차리지 못하고 망쳐버린 시험과 성사시키지 못한 회사 일을 더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가다듬었다. 남자한테 차이고 충격을 받고도 이랬으니 내가 이별을 선언한 경우는 말해 무엇할까. 내 입으로 직접 이별을 했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나의 이별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나의 모습은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일 것이다.
슬프다.
흐트러지지 못해서.



Posted by 슈테른
날적이2010/04/21 01:53
전면 무상급식 주장에 대해 누군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이들의 먹는 문제에까지 색깔론을 덮어씌우려는 저열함을 비웃어주는 한편,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원칙, 즉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려면 부모의 처지와 관계없이 아이들에게 평등한 출발점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고 입고 공부하고 자라는 문제에선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한 토대를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사회는 봉건/게급의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어린이 사회주의'야 말로 자본주의의 전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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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803호 <만리재에서> 중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근처에 가면 잘 씼지 않은듯 냄새가 났고, 감지 않은 머리는 갈라지고 기름져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 친구가 하는 일은 친구들이 앞뒤로 삼삼오오 밥을 먹는동안 그저 가만히 두 팔을 책상 위에 모으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서는 부끄러운듯 눈치를 보며 눈동자를 굴리는 것 뿐이었다. 가끔 담임 선생님이 도시락 뚜껑을 그릇삼아 아이들의 밥과 반찬을 모아 그 친구에게 주기도 했다. 혹은 학급 임원들을 시켜 챙기게 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챙기지 않아 굶는 날도 많았다. 

그 친구는 늘 외로웠다.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했고, 그 때문에 함께 나눠먹을 반찬이 없으니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친구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냄새가 나서 싫기도 했고, 나서서 그 친구를 챙길 용기도 없었다. 딱 한 번. 그 친구의 얘기를 들은 엄마가 어느날인가 한 번 점심을 따로 챙겨 줘 전해줬던 기억만 살짝 남아 있을 뿐이다.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등굣길에도 수업시간에도, 그 친구는 늘 혼자였다. 심지어 소풍을 가서도 그 친구는 늘 혼자였다. 같은 반 친구들이 각자 싸온 김밥을 하나씩 모아 건네주긴 했지만, 그 누구도 함께 둘러 앉지 않았다. 산처럼 수북히 쌓여 있던 김밥이 그렇게 외로워보일 수 없었다.

잘 먹지 못한 탓인지 작고 마른 체격이었고 언제나 기운 없는 모습이었다. 어쩌다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면, 귀기울여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생님들은 더 크게 하라며 그 친구를 나무랐지만, 곯은 배를 움켜쥐고 하루를 버티는 그 친구가 어찌 더 큰 소리로 말을 할 수 있었겠나 싶다.

선택한 적 없이 물려받은 '가난'. 가난은 그 친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가방을 챙기는 일도,
몸을 단정하게 하는 일도 서툴 수 밖에 없는 어린 나이의 친구를 돌봐줄 부모님의 시간, 그 때문에 제대로 챙겨 본 적이 없는 점심 도시락,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을 친구, 그리고 공부하고 뛰어 놀 기운까지...

이 친구의 기억이 '그땐 그랬다'는 옛날 이야기이길 바라지만,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누군가의 현실이다. 아이들의 밥 한끼를 빼앗지 못해 안달인 이상한 사람들이 땅에 살고 있다. 너는 뭐 먹고 자라 그러니 대체?
Posted by 슈테른
날적이2010/03/18 12:04

불쑥 떠난 여행이 얼마나 즐거운지, 그래서 또 얼마나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는지는 다녀온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토요일 밤 11시. 충동적으로 떠난 안면도 여행.

어디로 갈까? 안면도 어때? 

단 두마디를 주고 받은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면도로 떠났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여행이었다. 내일 아침이 아니라 '지금 당장' 떠나는 여행. 갈아 입을 옷도 없고 늘 가방 안에 있던 로션도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은 원래 그렇게 하는거니까.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술 한잔 들이키고 웃고 또 들이키고 웃기를 반복하며 보낸 안면도에서의 하루. 서울을 떠난지 정확히 24시간 후에 다시 출발지로 돌아온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 시간을 되짚으며 혼자 실실 웃어본다.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어떤 방법으로도 다 표현해낼 길이 없어서 안타깝다.

































다음 여행은 언제가 될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