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BOOK2007/09/29 12:38

전장에서 돌아온 한 남자가 있다. 너저분한 군복에, 방독면에나 끼는 안경, 그리고 짧게 깎은 보기흉한 머리카락. 허름하기 짝이 없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있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의 품이 바로 그것. 그러나 막상 돌아온 그는 갈 곳 없이 문 밖에서 서성인다. 왜?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잔인한 흔적은 과연 무엇인가. 발 등에 채이는 시체와 굶주림? 승전국과 패전국? 잃어버린 가족?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적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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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강

히틀러의 팽창 정책이 러시아 침략으로 이어지던 때, 작가 보르헤르트는 징집되어 간다. 참혹한 2차 세계대전의 전장 속에 있었던 그의 경험은 대표작 '문 밖에서’ 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는 개인적인 고백에 가까운 이 작품에서 자기 자신이 젊은 세대로서 겪은 절망과 희망 그리고, 그 젊은이들에게 무관심한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을 노래한다. 구슬프고 안타깝게. 그러나 희망적으로.

이 연극은 주인공 베크만이 러시아의 전장에 징집되어, 천 날 밤 만에 귀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전장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오직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견디어 낼 수 있었던 베크만. 그러나, 그가 돌아온 아내의 옆자리는 더 이상 그의 자리가 아니다. 이미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버린 아내는 그를 잊은 지 오래인 것만 같다.

전장 중에 무릎 뼈를 잃어버려 몸 마저 성치 않은 그는 갈 곳이 없다. 조국의 명예라는 거짓에 속아 전쟁에 참여했고, 그 때문에 갈 곳 없이 망쳐진 그를 두고 조국은 침묵으로 외면할 뿐이다. 도대체 그는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야 편히 누워 쉴 수 있을까.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 베크만은 엘베강에 몸을 던지지만, 엘베강은 그를 물 밖으로 내 뱉으며 다시 살아가라고 얘기한다. 마침 지나가던 젊은 여인이 집으로 데려와 전장에서 실종된 남편의 옷으로 갈아 입히고 따뜻하게 보살펴 준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외다리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사 베크만이 이끌던 작전에서 죽어간 사람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라며 달려드는 통에 그는 겨우 들어간 문 안에서 다시 문 밖으로 쫓겨난다. (이 부분은 베크만의 꿈과 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밤마다 자신을 조여오는 끔찍한 꿈에 쫓겨 시달리는 베크만은, 여러 생각 끝에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대령을 찾아가 자신의 책임을 도로 반납하러 왔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잘못된 작전지시로 죽어간 전우들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식구들과 따뜻한 저녁을 먹는 대령을 보니 더욱 분노가 치솟는다. 그러나 대령은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젠데 이런 몰골을 하고 과거에 얽매여 있느냐며 냉소적으로 대하고, 희극배우로 취직을 해 보라며 조롱한다. 베크만은 대령에게 책임을 넘기고 나면, 마음이라도 가벼워져서 새로운 문을 박차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무거운 비웃음을 한아름 받아 들고, 구수한 빵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꿈 같은 집 밖으로 쫓겨난다. 눈을 떠 보니 또 다시 문 밖이다.


전쟁이 끝난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을 잃었을까. 네 벽으로 둘러 쌓이고 지붕이 있는 집이 있고 없음은 중요하지 않다. 나를 받아주고 이해해 줄 사람들의 미소와 나의 일자리 하나에까지 신경을 써 줄 사회가 필요한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그런 곳은 없다. 전쟁의 상처에 사람들의 마음은 냉소로 가득하고, 전쟁을 발발 시킨 자들은 꽁꽁 숨어서 잘 살고 있다.

베크만은 다시 한번 살기 위해 시도한다. 어느 카바레를 찾아가 희극 배우로 취직 시켜달라고 매달린다. 상업적인 이윤이 최대 관건인 카바레 단장이 그에게 일자리를 줄 이유는 하나도 없다. 네 번째 문 밖이다.

죽지도 않은 아내를 잃어야 하고, 그를 위해 준비된 일자리라고는 하나 없는,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끔찍한 꿈과, 죽음마저 그를 토해내는 환상의 현실.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부모님을 찾아 간다. 그러나 설레이는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어떤 낯선 부인. 그의 부모님은 나치에게 충성을 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연금도 없이 쫓겨 났으며 어느 날 가스를 틀어 놓고 자살을 했다고 한다. 한달 치 요리를 할 수 있는 가스를 써 버렸다며 투덜거리는 낯선 부인을 뒤로 한 채, 그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문을 통해 밖으로 걸어 나온다.

도저히 발 붙일 곳 없는 현실에서 베크만은 이 극이 끝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자살을 꿈꾼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베크만을 설득하는 제 2의 자아, 즉 타아가 나타난다.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베크만에 비해 그의 타아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초현실적인 설정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베크만이 가진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그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 죽음이 아닌 삶을 얘기하고 싶었을 듯. 그렇다면 베크만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베크만은 앞서 만난 이들을 꿈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 자신을 보살피려 했던 젊은 부인의 외다리 남편이, 사실은 자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인을 운운하며 대령을 탓하고, 세상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고 생각했던 베크만은 몹시 혼란스럽다. 결국 살인자의 대열에 끼게 된 베크만은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듯 싶다. 고통은 베크만 자신만의 것이 아닌 것을.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가 무엇을 대상으로 원망하며 죽음을 향해 갈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죽을 권리가 없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베크만에게 되돌려 죄(?)를 씌워주는 결말은 씁쓸한 희망을 보여준다. 전쟁, 승자와 패자, 그리고 그 셋을 둘러싼 관련된 모든 것. 전쟁 앞에 우리 모두는 방관적 살인자이고 죄인이다. 그것이 베크만과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이다.

지난 전쟁의 책임을 지고, 전쟁의 미로에서 빠져 나올 때까지 우리는 살아야 한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 방법은 모두를 죄인으로 만든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 있지 않을까? 희곡이라는 형식이 주제를 더욱 살려주며 가슴아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