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2008/03/28 02:47


예전에 사용하던 블로그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업어오는 글이 있을터이니, 혹 재탕으로 올라오는 글을 보더라도 눈감고 넘어가 주시기를... 글에 따라 약간의 수정작업을 통해 시점에 맞을 수도 뭔소리인지 모를 옛날 얘기도 있을 것입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가 고장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어떻게든 고쳐 보겠다고 끙끙거리다, 결국 회사로 들고왔다. 이게 다 H 오빠가 결혼을 한 탓이다. 예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H 오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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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오빠는 1년 전 결혼을 했다. 오빠는 같은 과이면서 동아리 활동도 같이한 대학 1년 선배다. 집도 가까운 거리에 있고 해서 학교를 오가며 금방 친해졌었다. 나의 모든 것을 꺼내어 얘기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친구보다 더 친구 같았던 H 오빠. 그런 오빠를 알고 지낸 지 이제 10년도 넘었다.

그렇게 정이 다 들어 있는 H 오빠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살짝 이상해졌었다. 1분 1초도 이성으로 보인 적이 없는 H 오빠와의 오래된 우정. 그 우정이 불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차인 나를 위해 '군인이었던' 오빠가 오히려 나를 더 위로해 주고, 그러다 외로움에 치를 떠는 나에게 남자를 선물로 보내어 소개팅도 시켜주고, 시시때때로 잠실과 강변을 오가며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 아련한 기억...

그런 H오빠는 내 컴퓨터가 고장 날 때마다 달려와 재빠르게 고쳐주었고, 내가 졸업하던 날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수많은 친구 틈에서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그날 얼떨결에 우리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게된 오빠는 우리 아버지가 주는 술을 모두 다 받아 마셨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나에게 열심히 하라며 내 얼굴만한 '호빵맨' 인형을 사서 보내주고, 변변치 않은 연극을 올릴 때마다 내가 강매한 티켓을 들고 찾아와 공연장을 빛내주고, 놀랍도록 많이 먹는 나와 내 친구들을 위해 거침없이 주머니를 털던... 투덜이 스머프처럼 불만뿐이었던 20대 초반의 나를 달래 주고 도와준 센스만점 H 오빠.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가는 오빠와 예전과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정말로 그것은 한치의 빗나감도 없이 현실이 되었다. 저 기억들이 그립고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사람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  

컴퓨터가 고장났을 때 재빨리 달려와 고쳐줄 사람이 없다는 것 말고는 나 역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컴퓨터를 고치는 일 마저도 이제 우리 회사의 고급인력에 살짝 기대보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가져온 컴퓨터는 내 옆자리에 앉은 우리 회사의 친절한 egoing님이 아주 깔끔하게 고쳐주셨다. 예~)

내게 정말 좋은 친구였던 H 오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

근데,
오빠! 오빠의 결혼 소식을 우리 엄마가 아직도 아쉬워하고 계시다는 거. 알고는 있나? ^^;;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