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2007/10/19 09:47
# 기억 1.



2006년 12월 16일 일본 롯뽕기. 미친 듯이 춤을 추며 광란의 밤을 보낸 그날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멋진 밤이었다. 홍대 클럽을 즐겨(?) 찾던 나와 '사과'씨는 꼭 롯뽕기로 댄스 원정을 가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실제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었다. 그 계획은 여차여차 수포로 돌아갔지만,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 갈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발판 삼아 롯뽕기에서 그렇게 꿈꾸던 밤을 재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다른 밤이 아닌, 꼭 그 밤을 다시 재연하고 싶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뜻하지 않은 시간에 클럽에 가게 된 나. 낮 동안 입고 있던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고 섹시한 언니들 사이에서 춤을 춰야 했다. 왜 그 클럽에는 벽에 거울이 붙어 있었느냐 이 말이다. 거울에 비친 나의 미키마우스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술이 아무리 취해도 거울 속 미키카우스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깨어났다. 아씨. 다시 갈래. 미키마우스 티셔츠 말고, 다른 옷 입고.


# 기억 2.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연인에서 친구로 바뀐 그 사람. 나의 아픔은 생각보다 구질구질하게 길어지지 않았고, 마치 헤어진 지 2년은 된 듯 내 가슴과 머리가 희한하게 말끔해졌다. 하루 이틀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오래 고민했고, 그래서 헤어진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겠지. 아니면 말고.

하지만, 딱 한 번만 다시 만나고 싶다. 헤어진 그날 밤,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입고 나간 옷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마지막을 각오하고 나간 그 자리에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남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 두었던 옷은 온데간데없고, 그나마 입을만한 옷은 지저분해져 있었다. 대강 걸쳐 입고 나간 그 옷. 나이도 너무 들어 보였을 것이고, 가로 줄무늬 때문에 뚱뚱해 보이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버려버리고 싶다.
그 옷.


# 기억 3.

바로 전에 다녔던 회사 창간기념식 때 사회를 봤다. 평생 내가 두 번 다시 '사회'를 볼 일은 없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K 차장님도 덥석 해보겠다는 나의 대답에 당황했을 것이다. ^^

단상이 너무 높다.

멋진 부국장님과 함께 사회를 본다는 것도 그렇고 몇백 명의 사람들이 초대되었다는 것으로 초긴장 상태로 설레며 기다려 온 그날. 몇 안 되는 내 옷 중 품위(?)와 격식에 어울린다 싶은, 특히 치맛자락이 예쁜 고상한(?) 블랙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볼 터치도 하고, 눈화장도 좀 더 진하게 했다. 립스틱이 마르고 날아갈까 바르고 또 바르는 사이, 드디어 행사 시작.

아뿔싸. 내 앞에는 내 키만 한 단상이 놓여 있었다. 나름 예쁘다 싶은 원피스였는데, 왜 치마를 보여줄 수 없는 거냐고요. 평생 한 번뿐인 경험인데, 윗도리가 좀 더 화려한 그 어떤 옷을 준비할걸 그랬다. 중앙 무대로 뛰어나가서 한 바퀴 돌고 싶더라…….  사회 다시 보고 싶다.





후회라는 것과 거리를 두고 사는 내가 이깟 천 쪼가리 때문에 기억을 더듬고 있다니. 제기랄!! 코디가 연예인에게만 필요한 게 아닌 것 같다.



-- 추신: 이 글은 예전에 작성한 글인데, 기억 2의 바람은 얼마 전에 재연되었다. 하지만, 그닥 만회할 수 있는 옷차림은 아니었다는 거. 세상일이 참... 내 생각대로 안된다. ^^;;;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