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 올해 서른. 내가 '서른' 이 돼서도 애인 없이 뒹굴고 있으면 구제(어떻게?)해 주겠다던 J 오빠는 지난 5월에 결혼을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내가 '서른셋' 이 돼서도 애인이 없으면 결혼하자는 놈이 나타났다. 나의 첫사랑 P.
# 내 첫사랑은 짝사랑이다. 키가 크고, 앤드류(그 당시 유명했던 미국 청소년(?)드라마 주인공)를 닮은 멋진 외모에 장난기가 많았던 친구 P는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는데, 분명히 말해두지만 다른 여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열다섯이라는 나이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었지만, 사랑이 어디 나이로 따질 수 있던가.
나는 P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을 겪었고, 항상 가슴 한구석이 시리게 아파서 늘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살았다. 그 친구와 사소하게 얽히는 일로 혼자서 일희일비하던 많은 날. 아련한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면, 아직도 내 심장은 쿵쾅거린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설렘’을 주는 사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그 친구를 좋아할 것만 같다.
# 예상외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인 나는,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아, 열심히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고 꽃다발이며 레코드판 등을 선물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1년 반을 넘게 쫓아다녔음에도, 나는 결국 P와 사귀지 못했고, 그 세월의 끝에 P와 나는 그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쁜 놈.# 소위 말하는 ‘문제아’(문제아가 아닌 사람도 있나?)였던 P가 어느 날 큰 사고를 치고 전학을 가게 되었었는데, 어떤 일인지 자세히 모르겠으나 너를 믿으며 끝까지 네 곁에 남는 친구가 되겠다, 는 다소 유치한 내 연애편지 때문이었을까. 항상 일방적이었던 관계가 조금은 달라졌다. 몸은 더 멀어졌으나, 수화기를 붙잡고 서로 안부를 묻기까지 하는, 마음만큼은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좋은 친구가 된 우리는, 중간에 연락이 잠시 끊겼다가 스무 살 무렵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지도 못하고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생활하는 환경과 관심사가 달랐지만 소주 한, 두 병을 비우는 시간으로는 우리의 풋풋한 추억을 다 얘기하기에 한참 부족할 만큼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짧은 수다를 떨고 각자의 애정전선 상태는 어떤지 확인하곤 한다.
# ‘서른셋’이 되어 애인이 없으면 데려가겠다는(내가 물건이니?) 그 친구의 말에,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자, 네 엄마가 너 대학에 들어간 후에 만나라고 분명히 얘기했다며 흥분한다. 엄마와 직접 얘기를 나눠봐야겠다나.
다행히(?)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P의 이런 농담이 아쉽거나 섭섭하지 않다. 아마 P는 내가 서른셋이 되면 청첩장을 보낼 것이다. J 오빠처럼.
# P와 조만간 만나 소주 한 잔 걸치기로 했다. 그리고 P는 내가 보낸 연애편지를 가져오기로 했다. 얼마나 유치할까. 내 첫사랑은 아직도 애틋하고, 설레는 현재진행형이다. 아마 끝나지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