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2007/10/08 10:42

# 중.고등학교때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했던 나는, 선생님들과 그다지 두터운 친분도 없었고, '선생님'을 존경하지도 않았다. 그저 열 두개의 반을 돌며 열 두번의 똑같은 설명을 하는 기계라고 내 마음대로 정의를 내렸고, 말도 안되는 잔소리를 퍼붓기만 할 뿐 내 얘기 따위는 들어보지도 않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중학교 시절 내내 내가 유난히 미워했던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가정'을 가르치시는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사실 왜 미워했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이 잘 안난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시절 나의 철없음에 대해 언젠가 꼭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만 되뇌일 뿐이다.

선생님은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나에게 참 잘해주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썩히지 말라며 항상 나를 끌어주셨는데, 나는 생각 없다며 늘 도망다니에 바빴고, 선생님의 그런 관심은 나에게 그저 귀찮은 간섭에 불과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나를 어떻게든 붙잡아 주고 싶어 애쓰셨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못된 아이였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선생님은 학년이 올라가 다른 반이 된 나와 친구들을 불러 소풍날 다정하게 사진도 찍어주셨다
# 그렇게 중학교 1학년 생활을 마감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그토록 미워하던 선생님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그러나, 정말 기쁨도 잠시. 가정' 과목은 학년이 올라가도 배워야 했으며, 하필이면 같은 선생님께 배우게 되었다.

나의 반항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그런 나 때문에 선생님은 많이 울었다. 흐르는 눈물을 두손으로 감싸며 어깨를 들썩이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끝까지 차갑게 굴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는 그날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에게 끝없는 관심을 주고 챙겨주셨다.

정확히 무슨 일이였는지는 알려진바 없지만, 선생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내가 졸업하기도 전에 학교를 떠나셨고, 그제서야 선생님과 나 사이의 차가운 바람이 멎었다.

# 그렇게 세월 속에 묻힐 줄 알았는데...

생님의 온기는 날이갈 수록, 해가 갈 수록 더해만 가고 있다. 그 온기를 따라 몇년 전에는 선생님을 찾기위해 졸업한'중학교'응 찾아가 보았는데, 정보를 줄 수 없다는 학교측의 말 한마디에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아마도 학교측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생님을 뵐 자신이 없었기에 그렇게 쉽게 돌아섰을 것 같다. 사실은, 지금도 자신이 없고.

# 언젠가 내가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선생님이 나를 환하게 맞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보는 건 말도 안되는 욕심일까? 보고싶다. 나의 선생님.


* 아래는 성내중학교 1학년 12반 '김효진' 불량(?) 학생에게 '김기옥' 담임선생님께서 정성스럽게 써주신 편지글 입니다. 방학숙제로 낸 일기장의 마지막 장에 선생님은 제게 이렇게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효진에게.

효진아, 너의 일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7/16일 부분이다.가장 효진이 답고, 효진이의 착하고 고운 마음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니까.
 

일기장 마지막 장에 선생님이 쓴 편지
1년 가까이 너를 지켜보면서 1학년 12반 모두를 가장 사랑한 사람은
효진이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준우, 건호, 상우 같이 장난꾸러기들을 말썽꾸러기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이해 못하시는 선생님들께 안타까워하니 말이다.

그리고 혜진이 전학같다고 환송회 하던날, 즉석에서 대표로 떠나보내는 글을 지어 읽으며 흐느끼던 다정함. 효진이는 커서 정말 다정다감한 여성으로 성장할꺼야.

어쩌면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예술가적인 재능이 있어서인지도 몰라.

그런데 효진아, 참 섭섭한 점이 있단다.

예습,복습 노트 검사할때 표지에 네 이름이 없어서 써 넣어 준 것을 화이트로 지워버린 것 말이다. 왜 그랬을까? 잘 못쓴 글씨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써준 이름인데 그렇게 싹싹 지워버릴 수가 있니? 그렇게도 싫었니?

선생님 마음 한쪽에 찬 바람이 지나가더구나. 12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작문, 필체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학급일지 기록을 맡겼는데.. 너무 엄격하게 해서.., 또는 유머를 쓰지 않아 질려버린 거니?

효진아, 네가 보기에 선생님이 참 재미가 없지? 그것은 천성이기도 하겠지만 성장과정 탓이기도 할꺼야. 교육자 집안에서 고지식하게 자랐기 때문에 쓸떼없는(?) 여유를 부릴 줄 모른단다. ,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에 대한 인사도 늦었구나. 고마웠다.

흰색 브라우스 입었을 때 속에서 살짝 비쳐보이던 것 보았나 모르겠다..

효진아, 좋은 글 많이 읽고, 좋은 노래 많이 부르고, 좋은 친구 많이 사귀어서 학창생활을 풍요롭게 보내기 바란다.

Merry Christmas!

* 이어서 '행복한 블로고 스피어' 동참 릴레이 바통을 다음의 분들에게 넘깁니다. ^^  

- 애플알러지 / 애플님
- 오래된 정원 / 스위치히터님
- 산타페로 가는 사람 / 나비님
- 튀빙겐 가는 길 / 카프카님
- 보림재-임종국을 보배로 만드는 서재 / 정운현님
Posted by 슈테른